[중앙 칼럼] 대입 지원자들이 부르는 ‘렛 잇 고’
수년 전 영화관을 강타했던 ‘겨울왕국(Frozen)’은 지금도 디즈니 채널의 인기 영화 상위권으로 꼽힌다.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는 지금도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모든 여자아이들은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표정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겨울왕국은 두 자매의 이야기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공주 안나가 영원히 겨울 상태가 된 자신의 왕국을 구하고자 얼음 장수와 그의 충성스러운 애완 순록, 눈사람과 함께 헤어진 언니 엘사 여왕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렛 잇 고’는 언니 엘사의 노래다. 눈과 얼음을 만드는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엘사는 동생 안나와 놀다 실수로 자신의 초능력 때문에 안나에게 상처를 입힌 후 동생과 떨어져 외롭게 성장한다. 몇 년 후 폭풍우로 목숨을 잃은 부모를 대신해 여왕이 되지만 첫눈에 반한 이웃나라의 왕자와 결혼하겠다고 조르는 동생과 다투다가 실수로 왕국에 영원한 겨울을 가져온다. 공황 상태에 빠진 엘사는 북쪽 산으로 달아난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유로운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엘사는 얼음 궁전을 만들면서 ‘렛 잇 고’를 부른다. 이 노래는 부부가 작사, 작곡했다. 토니상을 휩쓴 뮤지컬 ‘애비뉴 Q’, 풍자극인 ‘모르몬경’을 만든 작가 로버트 로페즈와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 부부다. 두 자녀를 두고 있는 이들은 영화 사운드트랙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우연히 들은 이들의 인터뷰에서 이 노래가 탄생한 계기를 들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사는 로페즈 부부는 주제곡에 대한 느낌이 떠오르지 않아 집 근처에 있는 프로스펙트 공원을 산책하면서 엘사의 기분이 어땠을까 느끼기 위해 피크닉 테이블에 올라가 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단다. 부인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는 “디즈니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공주의 노래로 만들기 싫었다. 좀 더 다른 방식,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고 싶어 에이미 맨이나 토리 아모스 같은 싱어송 라이터들의 노래를 매일 들었다”고 말했다. 쉽게 악상이 떠오르지 않자 남편 로버트 로페즈는 어느 날 아내에게 이렇게 투덜거렸단다. “꼭 고등학생이 된 것 같아.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시험 결과는 좋지 않은 것처럼 말야….”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는 “그 말을 들으니 비로소 엘사의 마음이 느껴졌다. 우린 그 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곡을 써 나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인터뷰 끝에 틀어준 노래를 들어보니 요즘 대입지원 결과를 기다리는 고등학생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코로나를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대학에 지원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학생들은 누구보다도 심경이 복잡할 것이다. 자녀가 기대한 곳 이상의 좋은 대학에 합격해 기쁜 학부모도 있겠고,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 실망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대학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는 학생들, 받아든 통지를 보고 침울한 학생들에게 로버트 로페즈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을 전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나를 성공한 작사, 작곡가라고 하지만 나 역시 어떤 때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무조건 곡을 써야 할 때가 있어요. 누구나 삶에 창피한 순간이 있고 두려움도 있지 않나요? 나도 그래요. 그때 그 순간을 영화 주인공인 엘사처럼 ‘렛 잇 고’ 노래를 부르면서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2021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공부하며 힘들었던 마음을 다 털어내고 희망으로 대학의 문을 열고 들어가길 바란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 칼럼 지원자 대입 로버트 로페즈 로페즈 부부 크리스틴 앤더슨